저는 최근 갤러리바톤에서 열리는 배윤환 작가의 개인전 '무거운 숨'을 보고 나서, 한참 동안 그림 앞에 서 있었습니다. 바닷가 모래사장에 고꾸라져 누워 있는 코끼리, 어두운 방에 갇혀 문고리를 잡으려 코를 뻗고 있는 코끼리들. 그림을 마주하는 순간, 마음 한구석이 철렁 내려앉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것은 낯선 불안이 아니었습니다. 매일 마주하고 있던 저 자신의 무게가 그림 속에서 형태를 가진 것 같은 느낌이었거든요.

코끼리가 우리에게 말하는 것

작가는 이번 신작들에서 코끼리를 여러 번 반복해 등장시킵니다. 그런데 이 코끼리는 힘이나 권위를 상징하는 무언가가 아닙니다. 오히려 시간의 압력을 견뎌내는 듯한, 어떤 무거움을 짊어진 형상입니다. 거대한 몸으로도 빠르게 돌아가는 세계의 속도에 편입되지 못한 채, 제 자리에 머물러 있습니다.

갤러리바톤은 이 코끼리를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개인이 짊어진 무게와 불안을 비추는 은유"라고요. 정확한 말입니다. 우리 모두 알고 있으니까요. 그 무게가 구체적으로 무엇인지는 사람마다 다르지만, 그것을 견딜 때의 답답함과 고개를 들기 어려운 그 심정은 얼마나 비슷한지.

우리가 공통으로 짊어진 것들

요즘 주변을 보면 누구나 뭔가를 들고 있는 것 같습니다. 직장에서의 기대, 가정에서의 책임, 사회에서 요구하는 성공의 기준. 내가 충분한가, 내가 잘하고 있는가, 다음엔 어떻게 해야 하나. 이런 질문들이 계속 짊어집니다.

더 어려운 것은, 이 무게가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누군가는 이것을 견디지 못할 약함이라고 생각하고, 또 누군가는 이게 정상이라며 치를 떱니다. 하지만 배윤환 작가의 그림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은 약함이 아닙니다. 누구나 짊어지고 있는, 현대를 살아가는 개인의 진솔한 조건일 뿐입니다.

그 속에서도 붙잡을 수 있는 것

다행인 것은, 작가는 이 무게를 단순히 절망으로만 표현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전시에는 영상 작품들도 함께 전시되고 있습니다. '자화상'(2017년), '스튜디오 B로 가는 길'(2018년), '3시에 추는 춤'(2024년). 제목 자체가 이미 언어를 건네고 있습니다. 길이 있다는 것, 춤을 춘다는 것—그것이 아무리 무거운 상황 속이라도요.

저는 생각해봅니다. 코끼리가 짊어진 무게를 내려놓지 못한다면, 그 무게 속에서도 숨쉴 수 있다면 어떨까. 글자 그대로 '무거운 숨'을 쉬더라도, 그것이 멈추지 않은 숨이라면. 작가가 이 전시회에 붙인 제목처럼, 그 무거운 숨 속에서도 우리는 계속 살아가고 있으니까요.

괜찮을까, 우리

누군가 이렇게 물을 수도 있습니다. '이것을 모두가 견딘다는 것이 위로가 될까?' 하지만 저는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나만 이렇게 짓눌려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을 아는 것, 그것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위로인 것 같습니다. 배윤환 작가의 그림들처럼, 우리의 불안과 무게도 누군가는 자신의 작품으로, 누군가는 작은 말 한 마디로, 또 누군가는 옆에서 그냥 함께 있음으로 표현해 낼 수 있을 테니까요.

'무거운 숨'은 31일까지 갤러리바톤에서 관람할 수 있습니다. 혹시 마음이 무거울 때, 그 무게가 정상인지 괜찮을까 궁금할 때, 가서 코끼리를 만나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그것이 특별한 해답을 주진 못하겠지만, 적어도 나는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조용히 다시금 느낄 수 있을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