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속에서 사라진 것들을 보며 문득 마음이 먹먹했습니다. 그 인물이 실제로 어떤 표정이었는지, 어떤 눈빛이었는지 알 수 없다는 생각이 들 때 말입니다. 조선의 단종도 그런 인물 중 한 명이었습니다. 하지만 최근 그의 얼굴을 붓으로 되살린 화가가 있다는 뉴스를 접했을 때, 무언가 울렁이는 감정을 느꼈습니다.
역사 속 빈 얼굴을 채우다
동강 권오창 화백은 올해 78세입니다. 지난 7일부터 국립대구박물관에서 열리는 특별전 '우리 옷을 그리다: 권오창 화백 기증 복식인물화'를 앞두고 있는데, 그의 이력만으로도 이미 놀라웠습니다. 지정된 국가 표준영정 104점 가운데 17점을 그린 사람입니다. 우리나라에서 표준영정을 가장 많이 제작한 화가인 것입니다.
특히 주목할 점은 단종 표준영정(정부표준영정 제100호)입니다. 소설 '단종애사' 이래 불쌍한 소년으로만 그려지던 단종을 화백은 당당한 왕으로 되살렸습니다. 실마리는 구한말 최후의 어진화사 김은호가 창덕궁에서 세조 어진을 베껴 그리며 남긴 초본이었습니다.
한 화가의 정성이 고증을 만나다
화백은 단종의 삼촌인 세조의 어진에서 실마리를 찾았습니다. 포악하다고 알려진 세조와 달리, 초본 속의 세조는 온순하고 동그스름했다고 합니다. 여기에 태조 어진과 전주 이씨 골상을 더했고, 곤룡포는 고증에 따라 홍색으로 입혔습니다.
1444년 명에서 홍색 곤룡포를 받은 뒤, 역대 왕들은 붉은 옷을 입었던 것이죠. 이처럼 단종의 영정 하나를 그리기 위해 화백은 옷차림부터 골상까지 수십 가지 자료를 모으고 검토했습니다.
무언가 사라질 것만 같은 불안감
"그런 작업이 정말 의미가 있을까?" 혹은 "누가 봐줄까?" 하는 걱정을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전통 복식 분야의 연구자도, 우리 역사를 정성껏 다시 그리려는 예술가도 그럴 수 있습니다. 단국대 석주선 교수의 한마디가 떠올랐습니다. "복식을 그림으로 그리면 좋을 텐데, 돈이 안 되니 하는 작가가 없다."
실제로 권오창 화백은 굿판까지 찾아다니며 옷의 자태를 촬영하고 스케치했습니다. 연필 초안만 한두 달 이상 걸렸습니다. 한 사람의 얼굴을 그리기 위해 후손 수십 명, 많게는 100명 이상을 살펴 그 집안의 골상을 연구하기도 했습니다.
정신까지 담아내는 붓질
화백의 초상화 철학은 '전신사조(傳神寫照)'입니다. 단순히 얼굴 모양을 옮기는 것이 아니라, 그 인물의 정신까지 담아내려는 의지입니다. 비록 얼굴이 전해지지 않는 인물도 신분과 성정, 그 시대의 맥락을 고려해 그려냅니다.
그렇게 해서 단종은 더 이상 역사 속 "불쌍한 소년"이 아닙니다. 왕으로서의 당당함이 느껴지는 한 명의 인물로 돌아온 것입니다.
결론
무언가를 지키고 되살리려는 사람의 정성은 결코 헛되지 않습니다. 권오창 화백은 여든을 앞두고도 계속해서 붓을 들고 있습니다. 지금도 임진왜란 때 경북 영천에서 활약한 의병장 정대임의 영정을 그리고 있다고 합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이런 정성을 기억하고 관심 갖는 것입니다. 국립대구박물관의 특별전이 단종을 비롯한 여러 인물의 얼굴과 옷깃을 다시 만날 수 있는 기회가 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