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소식을 처음 봤을 때 제 마음이 움직였습니다. 이 여름이 지나고 가을로 접어들 무렵, 세계적인 거장들의 전시가 한국에서 차례로 열린다는 뉴스 말입니다. 마치 오랫동안 기다리던 친구들이 한꺼번에 찾아올 준비를 하고 있는 것 같은 설렘이 들었거든요.
하반기, 거장들이 한국으로 온다
올 상반기 우리가 포르말린 수조 속의 죽은 상어로 '매운맛'의 전시를 경험했다면, 이제 차가운 이성과 개념의 미술을 마주할 차례입니다.
다음 달 13일, 종로구 세화미술관에서는 게오르크 바젤리츠의 개인전이 시작됩니다. 올 4월 세상을 떠난 바젤리츠는 거꾸로 그린 회화로 전후 유럽 사회의 파괴된 질서를 표현해 미술사에 깊은 자국을 남긴 작가입니다. 세화미술관에서는 인물 회화, 드로잉, 부조와 작고 직전에 그린 신작을 선보일 예정입니다.
9월 1일에는 아모레퍼시픽미술관에서 솔 르윗 개인전이 개막합니다. 르윗은 자신이 지시문을 작성하고 제3자가 그것을 완성하게 만드는 독특한 방식의 개념미술가입니다. 월 드로잉과 조각, 회화, 드로잉 등을 만나볼 수 있습니다.
국내 작가들의 작품도 대규모로 만나볼 수 있습니다. 8월 27일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개막하는 서도호 전시는 초기작부터 대표작, 진행 중인 프로젝트를 아우릅니다. 반투명한 천으로 자신이 살던 집을 복제한 '집 속의 집' 시리즈가 특히 주목됩니다.
'너무 많은데 어떻게 다 볼까'라는 그 마음
이렇게 좋은 전시들이 짧은 시간에 한꺼번에 몰려오니, 역설적이게도 걱정이 생깁니다. 과연 모든 전시를 다 볼 수 있을까. 시간도 부족한데, 어느 전시를 우선해서 봐야 할까. 그런 마음이 드는 건 당연합니다.
하지만 전시회란 애초에 '다 보는' 것이 목표가 아닙니다. 한 작품과 제대로 마주나는 시간이 더 소중합니다. 바젤리츠의 거꾸로 뒤집힌 인물화 앞에서 한 번 멈추어 보고, 솔 르윗의 지시문을 따라 완성된 작품이 품은 의미를 천천히 생각해본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9월 5일 광주비엔날레도 '너는 네 삶을 바꿔야 한다'는 주제로 43팀의 다양한 작품을 선보일 예정입니다만, 모든 것을 봐야 한다는 부담은 내려놓아도 괜찮습니다.
축복은 선택할 자유에 있다
미술전시의 축복이란 끝없이 쏟아진다는 사실 자체가 아닙니다. 어떤 작품을 만날지, 언제 만날지를 내가 선택할 수 있다는 자유에 있습니다. 바젤리츠를 좋아하면 그를 선택하고, 개념미술이 궁금하면 솔 르윗을 선택합니다. 서도호의 '집 속의 집'이 마음에 닿으면, 그 한 시리즈에 푹 빠져도 됩니다.
멀리서 온 거장들의 작품을 우리 곁에서 만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그 안에서 내 속도로, 내 관심사로 선택할 수 있다는 것. 이것이 정말로 우리가 누릴 수 있는 축복입니다.
결론
이번 가을, 당신이 꼭 모든 전시를 봐야 한다는 부담은 내려놓으세요. 대신 한 작품, 한 전시를 마음껏 감상하는 경험에 집중해보세요.
다음 단계로는:
- 바젤리츠(8월 13일), 서도호(8월 27일), 솔 르윗(9월 1일) 중 가장 먼저 보고 싶은 전시 하나를 선택하기
- 각 전시의 전시 일정과 관람 시간을 미리 확인해 여유 있는 방문 계획 세우기
- 한 전시를 방문할 때는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한두 작품이라도 깊이 감상하는 것을 목표로 하기
미술전시의 축복은 충분합니다. 그 안에서 당신의 속도를 믿고, 당신의 선택을 소중히 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