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대학교 기계공학부 부경캠퍼스 연구실에서는 풍동 실험이 한창이다. 초속 20m의 인공 바람 속에서 항공기 날개의 형상을 시험하고, 쿨링 에어가 비행기 엔진 내 가스터빈으로 얼마나 균일하게 흐르는지 검증한다. 이는 단순한 대학 연구가 아니다. 영국의 글로벌 항공 엔진 기업 롤스로이스와 20년을 함께하는 원천기술 개발 프로젝트의 일부다.

글로벌 기업이 찾는 대학의 역할 변화

2006년 아시아권 최초로 부산대에 설립된 롤스로이스 대학기술센터(UTC)는 단순한 산학협력을 넘어 기업의 '사내 연구소'로 기능하고 있다. 롤스로이스는 전 세계 29곳에서 UTC를 운영 중이며, 각 거점마다 서로 다른 핵심 기술을 연구한다. 부산대의 경우 미래 친환경·고효율 항공 엔진 개발에 필수적인 열관리와 열교환기 분야에 집중한다.

센터의 규모도 상당하다. 교수 20명과 박사후연구원(포닥)을 포함해 70여 명이 참여하고 있으며, 이들은 항공기 엔진의 발열 제어와 비행 연료 냉각 같은 실질적 기술 과제를 풀고 있다.

국내 산학협력과 근본적으로 다른 '지속성'

국내 산학협력의 현실과 비교하면 차이는 명확하다. 대부분의 국내 협력은 기업이 대학의 교수 개인에게 단기 과제를 의뢰하고, 결과물이 나오면 협력이 종료되는 방식이다. 과제 기간이 1~2년 정도에 불과해 연구 성과가 기업의 실제 기술 개발로 이어지지 못하고, 대학도 기술을 축적해 심화 연구로 진전시키기 어렵다.

반면 롤스로이스 UTC는 특정 대학에 특정 기술 연구를 맡기고 10년에서 20년 단위로 기술 역량을 쌓는 구조다. 대학은 기술성숙도(TRL)를 기준으로 단계별 연구를 진행하고, 기업은 장기 기술 로드맵에 맞춰 원천기술 개발의 방향을 제시한다.

하만영 부산대 기계공학부 교수의 설명은 이 모델의 본질을 포착한다. "기업이 모든 연구를 직접 하는 대신 필요한 기술과 관련 연구를 전 세계에서 가장 잘하는 대학을 선정해 '사내 연구소'처럼 활용하는 것"이라며 "일종의 오픈 이노베이션"이라고 정의했다.

지역대학의 새로운 가능성으로 주목받다

이재명 정부의 국정과제인 '서울대 10개 만들기'가 지역대학 육성과 기업 주도 인재 양성에 초점을 두는 가운데, 부산대의 사례는 지역대학이 글로벌 기업의 전략적 파트너로 기능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UTC의 진정한 가치는 기술 개발 자체만이 아니다. 대학이 실무에 필요한 박사급 인력을 양성하고, 이들을 인턴-취업으로 연결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든다는 점이다. 또한 LG전자 등 국내 기업과의 협력도 확대 중이어서, 한국 산업의 기술 자립도 제고에 기여할 수 있는 토대를 갖추고 있다.

결론

부산대의 20년 산학협력은 단순한 성공 사례가 아니라 지속성과 신뢰라는 기본 원칙 위에 구축된 글로벌 경쟁력을 보여준다. 국내 기업들과 지역대학이 함께할 때 필요한 관점은 다음과 같다.

  • 장기 기술 전략 수립: 1~2년 과제가 아닌 5년 이상의 기술 로드맵 설정으로 누적 성과 확보
  • 대학의 자율성과 전문성 존중: 기업의 단기 성과 압박보다 원천기술 개발의 독립성 보장
  • 인력 선순환 구조 설계: 연구 참여자의 경력 개발과 실무 배치까지 포함한 통합 전략

이 모델이 성공하려면 기업의 인내심과 대학의 기술 책임감이 동시에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