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계천 옆 사진관의 이 제목을 본 순간, 저는 한참을 멈춰 있었습니다. 응원이 어떻게 폭력이 될 수 있을까요? 뉴스를 읽으며 느낀 것은 답답함과 그 속에 깃든 공감이었습니다. 사진기자로서 고교 야구 현장을 수년 다녀온 저도 그 경계가 점점 흐려지는 것을 목격해왔거든요.
응원에서 시작된 불편함
고교 야구는 한국 야구의 저변을 이루는 중요한 무대입니다. 저는 목동 경기장과 신월 야구장에서 몇몇 경기를 지켜보며 젊은 선수들의 열정을 마주했습니다. 그런데 최근 몇 해, 더그아웃에서 들려오는 응원 소리가 예전과 달라졌습니다.
선수들이 타석에 오르면 응원하는 목소리가 울려 퍼집니다. "가야지 가야지 안타 치고 가야지"라는 말입니다. 그것은 자연스러운 응원이었습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그 말의 뒷부분을 상대팀을 향해 바꿔 외치는 일이 생겼습니다. 제주도에서 올라온 팀을 향해 "가야지 가야지 감귤 따러 가야지"라고 외치는 것처럼 말입니다. 우리 팀에게 지고 얼른 집으로 돌아가라는 조롱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누군가는 그 말에 상처받고 있습니다
1, 2학년 학생들이 중심이 되어 응원을 주도합니다. 목청 큰 선수가 선창하면 나머지가 따라 합니다. 그것이 응원의 형식입니다. 하지만 응원이 조롱으로 변질될 때, 젊은 선수들은 무엇을 느낄까요?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은 이런 걱정을 하고 있을 겁니다.
- 우리 팀이 경험하는 조롱이 단순 응원을 넘어가지는 않을까 하는 불안감
- 경기장 밖에서도 그런 말이 이어지지는 않을까 하는 우려
- 응원과 괴롭힘의 경계가 흐려지는 것 아닌가 하는 의문
응원은 원래 따뜻한 것이었는데 말입니다.
그래도 붙잡을 수 있는 것들
저는 과거의 기억을 놓지 않습니다. 고등학교 시절, 대학 입시를 100일도 채 남기지 않은 상황에서도 학교는 전교생과 동문들까지 불러 모아 우승을 응원했습니다. 감독과 선수들이 운동장 단상에 올라 박수를 받던 그 순간은 단순한 승리가 아니었습니다. 함께 나눈 응원의 마음이었습니다.
그 마음이 아직도 남아 있습니다. 요즘 경기장에서도 순수한 응원을 하는 학생들을 봅니다. 과거처럼 응원단이 넘치지는 않지만, 승부에 대한 젊은 선수들의 열정은 여전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응원이 조롱이 되는 순간을 멈추는 것은 어른의 책임입니다. 경기장에서, 학교에서, 우리가 함께 그 경계를 지켜야 합니다.
결론
"이 꽃, 왜 이렇게 불쾌하죠?"라는 질문은 단순한 의문이 아닙니다. 응원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무언가가 누군가를 상처 입히고 있지는 않은지 자문하는 것입니다.
앞으로 경기장에 갈 때마다 저는 이 질문을 품고 싶습니다. 우리의 응원이 정말로 선수들을 응원하는 것인지, 아니면 누군가를 배제하는 것은 아닌지 말입니다. 그리고 당신도 함께 이 경계를 지켜준다면, 응원은 다시 따뜻해질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