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 발 반도체 특수가 한국 경제에 강한 성장세를 가져오고 있다. 곽노선 차기 한국경제학회장(57대)은 이러한 호황이 최소 1~2년간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고 진단했다. 다만 반도체 수출 증가를 전반적인 경기 회복으로 인식하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반도체 호황의 성과가 대기업과 고숙련 인력, 특정 지역에 집중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지금이야말로 잠재성장률을 높이기 위한 구조 개혁을 추진할 적기라는 진단이 나오는 이유다.
반도체 호황의 한계와 양극화 문제
반도체산업은 자본집약·기술집약적 산업이다. 따라서 생산 확대에 따른 성과가 대기업과 고숙련 인력, 특정 지역에 집중될 수밖에 없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소비를 통한 낙수효과가 일부 나타나겠지만 모든 산업에 균등히 퍼질 것으로 기대하는 것은 현실적이지 않다는 평가다.
반도체 호황에도 불구하고 경제 전반의 양극화 문제가 남아 있는 상황에서, 단순히 수출 증가를 경기 회복 신호로만 봐서는 안 된다. 지속 가능한 경제 성장을 위해서는 구조적 문제를 동시에 해결해야 한다.
노동시장 유연화, 혁신 산업 성장의 전제
곽 교수는 노동시장의 규제 완화를 가장 시급한 과제로 꼽았다. 산업 혁신을 요구하면서 노동 규제를 강화하는 것은 서로 맞지 않는 정책이라는 지적이다.
구체적으로는 주 52시간제나 노란봉투법 등에 대한 예외 조항 마련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혁신 산업의 특성상 모든 산업에 동일한 노동 규제를 적용하면 성장 제약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제조업과 서비스업, 신생 산업이 요구하는 노동 형태가 다른 만큼, 산업 특성을 반영한 차등 규제가 현실성 있는 정책이 될 수 있다.
금융 시장의 자원 배분 기능 강화
혁신 기업이 자연스럽게 성장할 수 있는 금융 시스템 구축도 중요한 과제다. 특히 모험자본(벤처캐피털)의 역할 확대가 필수적이다.
곽 교수는 실리콘밸리의 벤처 투자 생태계를 예로 들었다. 민간 투자자는 100개 기업에 투자해 대부분이 실패하더라도, 성장 가능성이 확인된 기업 1~2개에 후속 투자를 집중한다는 모델이다. 현재 한국은 이러한 모험자본 생태계가 충분히 자리 잡지 못한 상태다. 위험 감수 능력이 있는 VC와 투자자들이 더 활발하게 움직일 수 있도록 금융 시장의 구조적 개혁이 필요하다.
재정 운영의 방향성
반도체 호황에 따른 추가 세수가 예상되는 상황에서 재정 운영의 방향도 중요하다. 세금이 예상보다 많이 걷힌다고 해서 모두를 새로운 지출에 쓰기보다는, AI 인프라 조성이나 재정건전성 향상에 활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지적이다.
경기 확장 국면에서 재정을 확대하는 것은 과열을 초래할 수 있다. 장기 성장 기반을 마련하는 재정은 필요하지만, 시점과 규모를 신중하게 판단해야 한다.
결론
반도체 호황은 한국 경제에 성장의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하지만 이를 잠재성장률 향상으로 이어지게 하려면 동시에 구조 개혁이 추진되어야 한다. 노동규제 합리화, 금융 시장의 자원 배분 기능 강화, 신중한 재정 운영이 삼각형을 이루어야 지속 가능한 성장 구도가 만들어진다. 현재의 호황 국면이 개혁의 기회가 되지 않으면, 이후 경기 둔화 시 개혁 추진은 더욱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