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모두 누군가에게는 '낯선 사람'이다. 마주칠 일이 없는 사람, 말이 통하지 않는 사람, 다르게 사는 사람. 그럴 때 마음 한구석에서는 불안함이 일어난다. 모르는 것이 무섭고, 이해할 수 없는 삶의 방식이 이상하게 느껴진다. 이 불안함이 언제부터 시작됐을까? 최근 한국고대학회 주최 국제학술대회 '경계 너머의 괴물, 괴물의 고대사'에서 만난 답변은 놀라웠다. 고대시대 사람들도 우리와 같은 마음으로 타자를 '괴물'로 만들고 있었던 것이다.

고대 중원인들이 본 동해의 괴물

3세기 서진의 장화가 저술한 '박물지'에는 이런 기록이 남아 있다. "동해 가운데에 우체어(牛體魚)가 있는데, 형상은 소와 같고, 그 가죽을 벗겨 걸어두면 조수가 이르렀을 때 털이 일어나고 조수가 물러나면 털이 눕는다." 소의 몸통에 물고기의 성질을 가진 이 생물은, 중원인들의 눈에 인간 세계의 경계 위에 있는 존재였다.

'박물지'와 '이원'(5세기 남조 송의 유경숙이 당대의 괴이한 이야기를 모은 책) 같은 고문헌들이 그려낸 괴물들을 분석하는 것은 단순한 역사 탐구가 아니다. 이것은 낯선 것을 어떻게 인식하고 표현하는가에 관한 인류의 오랜 질문을 되짚는 일이기도 하다.

정보가 왜곡되는 과정 — 언어 불통과 소문의 결합

한국항공대 권순홍 교수는 이날 발표에서 중요한 지적을 했다. "괴물성은 언어의 불통, 생활 방식의 차이, 지리적 거리, 전승과 소문이 결합하는 과정에서 형성된 타자의 표상"이라고 말했다.

이를 명확하게 보여주는 것이 바로 왜(倭)와 그 주변 지역의 어부들, 수인(水人)과 해인(海人)에 관한 기록이다.

3세기 '삼국지'는 이들을 이렇게 묘사했다: "바다에 들어가 물고기와 조개를 잘 잡는데, 문신은 큰 물고기와 바다짐승을 피하려는 것이었다." 실제 생활 방식에 관한, 비교적 객관적인 기록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이 정보는 변했다. 7세기 '양서'는 같은 집단을 이렇게 기록했다: "해인이 있는데…사람들의 몸에 짐승과 같은 무늬가 있다." 8세기 티베트어 문서는 더 나아가 "사람들이 물속에서 물고기처럼 산다"고 적었다.

구체적인 생활 방식에 관한 정보가 전승 과정에서 비인간적 형상으로 재구성됐다. 바다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생활은 인간 공동체의 경계 위의 존재로 변환되어갔다. 말이 통하지 않고, 삶의 방식이 다르고, 거리가 멀수록, 소문은 더욱 자유로워진다. 그렇게 사람이 괴물이 된다.

우리는 지금도 그 과정 속에 있다

고대의 이 과정은 현대에도 여전히 벌어지고 있다. 문화 차이, 언어 장벽, 거리감 속에서 우리는 얼마나 자주 타자를 재구성하고 있는가?

소문은 빠르고, 편견은 단순하며, 이해는 시간이 걸린다. 다르게 사는 이들에 관한 정보가 부족할 때, 우리의 뇌는 자동으로 빈 공간을 기이함과 위험으로 채운다. 이것은 고의가 아니다. 이것은 인간의 오래된 습성이다.

결론: 우리가 할 수 있는 것

하지만 그것을 안다는 것만으로도 뭔가 변한다.

낯선 것 앞에서 불안해하는 나를 관찰하고, 그 불안이 어디서 오는지 알아차릴 수 있다. 소문을 듣고 검증하기 전에 판단하는 순간을 포착할 수 있다. 다르다는 것이 이상하다는 뜻은 아니라는 것을 천천히 마음에 새길 수 있다.

고대인들이 몇 세기에 걸쳐 했던 오류를 우리는 한 번의 대화로 건너뛸 수 있다. 그것이 우리의 작은 위로이자, 다음 세대를 위해 우리가 지킬 수 있는 약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