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뉴스를 접할 때면,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할 때마다 그것이 얼마나 많은 의미를 가지는지 생각하게 된다. 개인의 결정이 사회와 맞닿아 있고, 개인적 선택이 정치적 발언이 되는 시대. 바로 그 불안감 속에서 우리는 한강 작가의 말에 귀를 기울인다.

개인과 정치, 구별할 수 없는 것들

12일 프랑스 아비뇽에서 열린 제80회 아비뇽 페스티벌에서 한강 작가는 한 시간 12분간 독자들과 대담을 나눴다. 그 자리에서 그는 자신이 자주 받는 질문에 답했다. "정치적 글쓰기를 하는가?"라는 물음 앞에서.

"개인적인 것과 정치적인 것을 구별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는 구체적 예를 들었다. '채식주의자'는 매우 개인적인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굉장히 정치적인 소설"이고, 반대로 '소년이 온다'는 사람들이 사회적 소설이라고 부르지만 "제게는 굉장히 개인적인 소설"이라고 했다.

그 말을 들으면서 느껴지는 것이 있다. 우리가 해왔던 많은 의심과 불안감이 한곳으로 모여지는 듯한 느낌 말이다.

왜 우리는 그 말에 공감하는가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을 생각해본다. 누군가는 자신의 쓰기와 말하기가 얼마나 정치적인지, 혹은 그렇지 않은지를 분류하려고 애써본다. 또 누군가는 개인의 선택과 사회적 책임 사이에서 흔들린다. 하지만 한강의 말은 그 분류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한강은 자신이 글을 쓰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전 역사에 걸쳐 모든 인간들이 반복해서 저지르고 있는 폭력에 대해 쓰고자 했다."

개인적 관찰에서 시작되는 그의 글쓰기는, 어느새 인류 역사 전체의 폭력에 대한 증언이 된다. 우리의 개인적 목소리도 그런 것이 될 수 있다는 걸 그는 보여준다.

눈이 내리는 방식으로 치유하기

그렇다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 한강이 제주 4·3사건을 다룬 장편소설 '작별하지 않는다'에서 말한 것에 답이 있다.

그는 "눈은 차갑고 부드럽고 사라진다"며 "눈이 내리는 것처럼 역사의 폭력에 대한 애도와 치유가 이뤄지기를 바랐다"고 했다.

개인적이면서 정치적인, 그 구별 불가능한 지점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애도와 치유다. 시간 속에서 천천히 소멸되는 눈처럼, 우리의 개인적 슬픔과 사회적 상처가 함께 치유되기를 바라는 것이다.

결론

한강 "개인적-정치적 글쓰기 구별할 수 없어"라는 발언은 단순히 글쓰기에 관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 모두의 삶이 정치적이면서 동시에 개인적이라는 인정이고, 그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말자는 조용한 권유다.

다음을 생각해보자:

  • 내 개인적 선택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고민해보기
  • 개인과 정치를 구별하려는 노력보다, 그 둘을 연결하는 이야기 찾기
  • 폭력의 역사 앞에서, 나만의 애도와 치유 방식을 천천히 만들어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