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화되는 학생 문해력 저하, 교실에서의 대면 인문학으로 돌파
생성형 인공지능 활용, 과도한 스마트폰 사용, 숏폼 영상 시청 증가 등으로 초중고교 학생들의 문해력 저하가 심각해지고 있다. 긴 글을 읽고 맥락과 내용을 이해하는 능력이 떨어지면서 교육 현장의 우려가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이에 서울시교육청은 올해 전국 시도교육청 중 처음으로 5개 고교를 '인문학 실천학교'로 선정해 운영하고 있다. 교실에서 문화·역사책을 읽고 토론하는 형식으로 학생들의 '생각하는 힘'을 키우는 것이 핵심 전략이다.
인문학 실천학교의 구체적 운영 현황
서울 관악구 당곡고는 인문학 실천학교로 지정돼 전교생을 대상으로 인문학 기반 교육과정을 진행하고 있다. 올해 1학기 2학년을 대상으로 한 선택과목 '주제탐구독서'에서는 63명의 학생이 50분씩 20차례 수업을 받았다. 학생들은 인문교양 도서 '먼저 온 미래'를 읽고 'AI 시대와 문학'을 주제로 문학 평론가, 국어 교사 등의 역할을 맡아 AI 시대의 문예 창작과 글쓰기의 본질에 대해 의견을 나눴다.
정규 과목 외에도 당곡고는 희망 학생 대상 인문사회아카데미를 운영하고 있다. 현재 56명이 신청한 이 아카데미에서는 윤리·역사 교사가 독서 강의와 심화 토론을 진행한다. 1학기에는 스웨덴 통계학 석학 한스 로슬링의 저서 '팩트풀니스'(2018년)를 활용해 인간의 판단 오류와 비합리성을 주제로 토론했으며, 4월과 6월에는 전문 강사를 초청해 '인류 문명과 미래 사회', '헌법으로 만나는 나, 우리, 대한민국'을 주제로 강연을 진행했다.
당곡고 내 인문학 동아리는 도서반, 토론반, 미디어리터러시반 등 15개에 달한다. 주목할 점은 학부모 19명이 자녀 교육을 위해 별도의 인문학 동아리를 구성해 함께 참여하고 있다는 것이다. 학부모들은 책 한 권을 선정해 독서 토론을 하고 인상 깊은 구절을 캘리그래피로 적는 활동을 통해 깊이 있는 대화의 기회를 갖고 있다.
학생과 학부모가 체감하는 변화
당곡고 1학년 조하은 양은 "기술 혁신으로 AI 등이 인간을 대체하고 있지만 인문학 등 인간에 대한 학문을 좀 더 깊이 이해해야 기술 발전도 의미가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는 디지털 시대 속에서 인문학적 사고의 필요성을 학생 스스로 인식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학부모 한지혜 씨(48)는 "학부모들도 인터넷이나 스마트폰에 노출돼 평소 책을 읽을 기회가 적고, 자녀들과도 주로 입시 문제 등에 대해 대화한다"며 "다른 학부모들과 책을 읽고 깊은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소중한 기회였다"고 전했다. 인문학 실천학교의 영향이 학생을 넘어 학부모까지 확대되고 있는 양상이다.
교육청의 장기 전략과 향후 방향
올 5월 당곡고는 '사제동행 인문학 기행'을 실시했다. 학생들은 작가 김유정의 소설 '동백꽃' 등을 읽은 뒤 강원 춘천시 김유정문학촌을 방문해 문학작품과 실제 배경지를 연결하는 경험을 했다. 이같은 활동은 교실 내 독서와 토론에 더해 현장 학습까지 병행하는 체계적 인문학 교육의 모습이다.
서울시교육청은 현재 진행 중인 5개 인문학 실천학교의 사례를 통해 2030년까지의 모델을 확립할 계획이다. 개별 학교의 시도를 모아 정책화하고 확산시킬 구상을 갖고 있다는 의미다.
결론
디지털 과의존으로 인한 문해력 저하 시대에 인문학 실천학교는 교실에서 문화·역사책을 읽고 함께 토론하는 방식으로 학생들의 사고력과 이해력을 회복시키려는 실질적 대응이다. 학생뿐 아니라 학부모까지 참여하는 이 움직임은 가정과 학교가 함께 인문학적 소양을 강화하는 생태계를 만들고 있다.
다음 단계: 자녀의 학교에서 유사한 인문학 프로그램이 운영되는지 확인해보고, 가정에서도 정기적인 책 읽기와 토론 문화를 시작해볼 것을 권장한다. 아울러 학부모 주도의 독서모임 구성을 통해 자녀와의 의미 있는 대화 기회를 만드는 것도 좋은 실천 방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