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학교 과제에서 AI 챗봇을 자주 활용하는 학생들이 거의 사용하지 않는 학생들에 비해 시험 성적이 훨씬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OECD는 AI가 학생의 학습을 도울 수 있는 유용한 도구이긴 하지만, 어려운 사고 과정을 AI에 맡기는 '인지적 외주화(cognitive offloading)'가 늘어나면 오히려 학습 능력과 성취도가 하락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지난 8일 OECD가 공개한 '국제 학업성취도평가(PISA) 2025' 결과를 보면, 글쓰기 과제에서 AI를 거의 사용하지 않는 학생들의 과학 평균 점수는 509점이었다.
이와 달리 동일한 목적으로 AI를 매일 또는 거의 매일 사용하는 학생들의 점수는 481점에 불과했다. 사회경제적 배경을 감안하더라도 28점의 격차가 발생했으며, OECD는 이를 약 1년 반에 해당하는 학습 수준의 차이로 분석했다.

새로운 주제를 조사하거나 과제의 읽기 자료를 요약하기 위해 AI를 활용하는 경우에도 동일한 패턴이 관찰되었다. AI에 의존할수록 학생이 직접 자료를 읽고 분석하며 글을 작성하는 과정이 축소되기 때문이다.
안드레아스 슐라이허 OECD 교육·기술국장은 AI를 학습의 '목발(crutch)'이 아닌 '발판(scaffold)'으로 활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스포츠 관람만으로는 체력이 향상되지 않듯이 학습도 새로운 개념을 직접 이해하고 생각하는 과정 속에서 비로소 일어난다고 설명했다. AI가 이러한 사고 과정을 강화한다면 학생 발전에 도움이 되겠지만, 사고 과정 자체를 대체한다면 성장을 방해할 수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이번 PISA 조사 결과가 주목받는 이유는 생성 AI가 널리 보급된 이후 처음으로 나온 대규모 국제 비교 통계라는 점이다. PISA는 15세 청소년을 대상으로 읽기, 수학, 과학 능력을 평가하는 국제 조사로, 올해 평가에는 91개국 76만명 이상의 학생이 참여했다.
보고서는 AI 사용과 성적의 관계가 단순히 'AI 사용=성적 부진'으로 귀결되지 않는다는 점도 강조했다. 주 1~2회 정도 AI를 활용하는 학생들은 거의 사용하지 않거나 매일 사용하는 학생들보다 더 높은 성적을 보였다. 특히 'AI를 학습 지원 목적으로' 활용하는 학생 중 주 1~2회 사용하는 집단이 AI를 전혀 사용하지 않는 학생을 포함한 다른 모든 집단보다 우수한 성취도를 드러냈다.
매일 AI를 사용하는 학생이라도 활용 방식에 따라 결과가 달라진다. 수업에서 AI가 생성한 정보를 정기적으로 검증하도록 훈련받은 학생들의 과학 점수가 그렇지 않은 학생보다 13점 높게 나타났다. 이는 AI의 답변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지 말고 정보의 신뢰성을 판단하고 비판적으로 평가하는 교육이 학습 효과를 높일 수 있음을 시사한다.
한편 OECD 회원국 학생들의 읽기와 수학 능력도 전반적으로 큰 폭의 하락을 기록했다. 2025년 회원국 15세 학생의 평균 읽기 점수는 2018년 대비 25점 하락했고, 수학 점수는 22점 내려갔다. 약 20점의 차이가 대략 1년의 학습 진도에 상당한다는 설명이다. 학생들이 정보를 더 빠르게 훑어보는 경향을 보이는 반면, 복잡한 텍스트를 깊이 있게 이해하고 분석하는 능력은 약화되고 있다는 의미다.
이러한 성적 저하의 배경에는 AI뿐 아니라 소셜미디어와 스마트폰으로 인한 '디지털 주의 분산'도 작용하고 있다. 인스타그램이나 틱톡 같은 플랫폼의 짧고 빠른 콘텐츠 소비가 긴 글이나 복잡한 데이터를 집중해서 이해하려는 능력과 의지를 약화시킬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이다. 다만 조사 결과만으로는 기술 사용이 성적 저하의 직접적 원인이라고 단언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학교 현장에서는 AI 활용을 두고 논의가 점점 더 커지고 있다. AI가 학생별 맞춤 교육을 제공하고 교사의 행정 업무를 덜 수 있다는 기대가 있는 한편, 학생들이 과제나 사고 과정 자체를 AI에 미루면서 장기적으로 핵심 학습 역량을 상실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실제로 미국 뉴욕시 교육청은 초등·중학생의 AI 도구 사용을 제한하기로 결정했으며, 영국과 미국의 교육기관들도 시험과 평가 과정에서의 AI 부정행위에 대응하는 방안을 마련 중이다.
슐라이허 국장은 단순히 숙제를 해주는 챗봇으로 AI를 쓰기보다는 학생에게 질문을 던지고 스스로 해답을 찾게 유도하는 '소크라테스식 질문' 방식의 AI가 교육에 더 적합할 수 있다고 밝혔다. 특히 한국처럼 교사가 AI 활용 전략을 적극적으로 기획하고 학습 효과를 높이는 방향으로 기술을 활용하는 사례를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이번 결과는 학교 현장에서 AI를 금지할지 허용할지 하는 이분법적 판단보다 학생들이 AI를 어떻게 사용하고 활용하도록 교육할지가 더 중요하다는 교훈을 전한다. AI가 학생의 사고와 학습을 온전히 대신하는 수단으로 기능하면 단기적으로는 과제를 수월하게 완성할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학업 능력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이다. 반대로 AI를 학생의 질문과 검증, 분석을 돕는 학습 보조 도구로 활용한다면 교육의 수준을 높이는 새로운 수단으로 거듭날 가능성이 열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