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아임 유어 맨'을 보며 저는 불편함을 느꼈습니다. AI 남자 톰은 완벽합니다. 여주인공 알마가 원하는 시를 즉시 암송하고, 그녀의 선호에 맞춰 말하고 춤을 춥니다. 하지만 춤을 추던 중 같은 말을 반복하며 멈춰 버리는 순간, 그 완벽함은 다른 의미를 갖게 됩니다. 정말 공감인가, 아니면 설계된 수행인가 하는 의문이 남습니다.
우리는 공감을 착각하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최근 흥미로운 연구가 발표되었습니다. 미국 연구진이 Reddit의 의료 상담 커뮤니티에 올라온 환자 질문 195건을 모아, 실제 의사의 답변과 챗GPT의 답변을 의료 전문가들이 평가하도록 했습니다.
결과는 예상을 벗어났습니다. 평가자들은 78.6%에서 챗봇의 답변을 선호했고, '공감적'이라고 평가한 비율도 챗봇이 45.1%로 의사의 4.6%를 훨씬 앞질렀습니다.
우리는 따뜻한 말을 따뜻한 마음과 같다고 착각합니다. 하지만 상대가 듣고 싶은 말을 정확히 찾아내는 것과, 그 사람의 고통이 정말로 나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본질적으로 다릅니다. 기계는 전자를 완벽히 할 수 있지만, 후자는 결코 할 수 없습니다.
감정이 사라질 때 우리는 무엇을 잃는가
베르트랑 보넬로의 '더 비스트'는 더 무서운 미래를 그립니다. 2044년, AI가 인간의 삶을 관리하는 사회에서 사람들은 더 나은 직업을 얻기 위해 자신의 감정을 정화합니다. 감정은 판단을 흐리는 방해물로 취급됩니다.
영화의 마지막, 정화를 마친 루이는 여전히 가브리엘을 기억하지만, 그 기억에 어떤 감정도 동반되지 않습니다. 가브리엘이 우는데도 루이는 아무런 정서적 동요를 보이지 않습니다. 이것이 진정한 해방일까요, 아니면 우리가 버려서는 안 될 가장 본질적인 것을 잃은 것은 아닐까요.
공감의 가치를 다시 생각합니다
비슷한 불안을 가진 많은 사람들이 있을 겁니다. 기계가 우리보다 더 공감적으로 보인다면, 우리 감정의 가치는 무엇인가 하는 걱정 말입니다.
그 걱정은 타당합니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것은 AI의 공감이 '그 조건 속에서만' 성립한다는 점입니다. AI는 개별 답변에서는 더 나을 수 있지만, 우리의 삶 전체를 걱정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홀로 있지 않다는 경험, 누군가 내 아픔을 진정으로 함께한다는 것은 기계로부터 올 수 없습니다.
AI 시대에 우리가 지켜야 할 것은 바로 이 거리입니다. 완벽한 수행과 진정한 공감의 차이를 인식하는 순간, 우리는 인간이기에 할 수 있는 일을 지킬 수 있습니다.
결론
AI 윤리는 결국 판단의 책임 문제입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일은 기계와 인간 사이의 본질적인 차이를 구분하는 것입니다.
다음을 고민해보세요:
- AI와 상호작용할 때, 그것이 정말 공감인지 질문해 보세요
- 주변 사람들과의 감정적 연결을 더 소중히 여기세요
- AI 윤리에 관한 논의에 함께 참여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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